[スクラップ]<朴賛浩 特集>
ドジャース時代の友を懐かしむ
(第1部:野茂英雄)
ポスト詳細情報:
出処:naver blog / ブロガー:dodgernation
2010. 9. 28
朴賛浩
이곳 시각으로 12일. 박찬호가 마침내 노모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기존의 노모가 가지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최다승과 타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빅리그 17년 동안 여러 난관을 극복한 체, 달성한 기록이라서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동양인 최다승까지 남은 1승을 꼭 채워서 명실상부 역대 아시아 최다승 투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청운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 메이저리그라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던 박찬호. 당시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은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불혹을 앞둔 노장 선수가 되었습니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으로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했던 시절 함께했던 동료들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하나 둘 씩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건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 뿐입니다. 그리고 그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비단 박찬호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박찬호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함께 울고 웃었던 우리들 역시 그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나라 전체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한 그와 함께 뛰었던 추억의 선수들. 피아자, 노모, 캐로스, 몬데시 등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다저스 시절 친구들.
지금도 뒤돌아 보면 박찬호에게 공을 건네주며 그 자리에 서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을 한 명씩 떠올려 보면서, 당시의 모습과 최근 근황까지도 함께 알아 보려고 합니다.
박찬호의 아시아 단독 최다승 달성을 염원하며 마련한 다저네이션의 특집 포스팅.
"다저스 친구들을 기억하다." 최다승 달성이 있기까지, 전성기는 물론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다저스 시절에 대한 회상. 제 1부는 오늘로서 박찬호에게 아시아 최다승 타이를 허용하게된 노모 히데오입니다.
*본 시리즈는 과거 다저네이션 블로그 초창기 시절에 올려졌던 포스팅을 전면 재수정 및 선수별로 다시 나눠서 올리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박찬호 선수의 전성기 시절인 1997년~2001년도에 다저스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로 글을 구성했으며, 그 당시 한국 팬들에게 친숙했거나 어느정도 기억에 남아있는 은퇴 선수들 위주로 총 19명으로 줄여봤습니다. 글의 내용은 박찬호 선수와의 관계와 함께, 선수 개인에 대한 소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꾸며봤습니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 여부와 상관없이 단문 형식의 시리즈로 하나씩 포스팅 됩니다.
■노모 히데오(Nomo Hideo), 선발투수 *다저스 시절 1995~1998, 2002~2004 *은퇴 2008
다저스 통산(7년) 81승 66패 3.74 12완투 7완봉승, 은퇴 후 일본 오릭스 코치 활동 등의 후진 양성 중
"메이저리그에 휘몰아친 토네이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인생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노모 히데오. 박찬호와 함께 동양 선수들의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진출의 시작을 알린 그는 동반자로서의 모습은 물론, 때로는 라이벌로서 치열한 삶을 함께 걸어온 선수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의 시작은 다저스였습니다.
사회인 야구 선수로서 출전한 1988년도 서울 올림픽. 당시 일본 야구 대표팀의 은메달 주역이었던 노모는 이후 프로에서도 빛나는 선수로 자리를 잡습니다. 1990년 부터 일본 프로야구 긴데스 버팔로스의 에이스로서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감독과의 불화 및 다년계약 협상결렬 등의 악재가 찾아오고, 결국 노모는 당시 에이전트 돈 노무라와 함께 미국 진출을 도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 은퇴라는 파격 선언을 했고, 1995년 2월 다저스와 계약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을 알립니다. (당시 노모의 미국진출 방법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일종의 편법이었고, 이 사건이 있은 뒤 일본 프로야구는 곧바로 관련 제도를 수정했다는 후문입니다.)
1995년 5월 2일. 라이벌 샌프란시스코전 선발 등판을 시작으로 빅리그에 "토네이도" 돌풍을 일으킨 노모는 13승 6패 2.54 ERA, 4완투, 3완봉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신인왕까지 휩쓸어 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다음 해에도 사이영 투표 4위까지 오르는 등 계속적인 맹활약을 펼치고 있던 노모. 마침내 그는 1997년 박찬호와 함께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을 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3년차가 되자 "전가의 보도" 처럼 휘두르던 포크볼이 간파 당하기 시작하며 데뷔 후 가장 안좋은 성적(14승 12패 4.25)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반면 박찬호는 당당히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며, 14승 8패 3.38의 성적으로서 다저스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결국 노모는 1998년 6월 메츠와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3년간 세 개의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되며 다저스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은 박찬호와 묘한 대조룰 이루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후 2001년 보스턴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 재기에 성공하게 되는 노모는 박찬호가 텍사스로 떠나버린 다저스에 돌아오게 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친정팀에서 다시 수준급 선발투수로서의 활약을 이어가게 됩니다.
메이저리그 12년 통산 123승 109패 4.24 ERA, 16완투, 9완봉, 2노히트노런(양대리그)을 기록하는 등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확실한 발자취를 남긴 투수 노모 히데오. 현역시절 멋진 투구폼과 함께 뛰어난 실력, 그리고 과묵했지만 언제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지금도 다저스타디움 관중석 통로 기둥에 수많은 다저스 레전드 선수들과 함께 사진이 부착되어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도 그 실력과 상징성을 인정받는 선수입니다.
2008년 4월 마지막 팀이었던 캔자스시티에서 방출되고, 같은 해 7월 공식적으로 메이저리그 은퇴를 선언했던 노모 히데오. 아시아 최다승 투수라는 업적을 남긴 체, 12년간 끊임없이 달려온 불꽃같은 도전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됩니다.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오릭스 버팔로스 임시 코치를 거쳐 작년 2월, 1년 계약으로 정식 코치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한때는 발렌타인 감독이 떠난 지바 롯데의 차기 감독으로 급부상 하는 등 일본 야구계에서도 무시못할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10/09/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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